고려사 권56 지리1의 과천
995년(성종 14) 10도제를 시행할 때는 관내도(關內道)에 소속되었고, 인근 금주(衿州)에 단련사가 파견되었지만, 과주는 여전히 지방관이 없는 상태에 머물렀다. 그러다 마침내 고려 군현제가 정비되는 1018년(현종 9)에 광주목에 소속되었다. 광주는 983년(성종 2)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할 때 그 하나가 된 곳으로, 한반도 중부의 중심이 되는 큰 고을이었다. 광주목에는 4군과 3현이 소속되었는데, 과주는 그중 하나였다. 이렇게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고, 큰 고을에 속한 군현을 속군현(屬郡縣)이라고 하였는데, 과주는 나말여초의 전환기에 영현을 거느린 군에서 광주목의 속군으로 떨어진 것이다.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과주의 행정은 군사(郡司)의 향리들이 담당했으며, 광주목사의 지휘와 감독을 받았다.
현종 때 전국을 5도와 양계로 나누었는데, 광주목과 과주는 양광도에 속했다. 그러나 1069년(문종 23) 일시적으로 경기를 확대하였을 때, 과주는 경기에 이속되었다가 경기가 원래대로 복구되면서 곧 양광도로 돌아왔다. 그후 1390년(공양왕 2) 다시 경기도가 개편될 때 경기좌도에 이속되어 조선시대로 이어졌다.
과주에는 ‘후에 감무를 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후’가 언제인지 알려주는 기록은 없다. 감무는 1106년(예종 원년) 이래 인종, 명종대에 여러 차례에 걸쳐 파견되었다. 예종 원년에는 우봉(牛峯) 등 23개 현에, 3년에는 토산(兎山) 등 41개 현에 대거 감무를 보냈다. 여러 자료를 종합해 볼 때 ‘후’는 예종 때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과주에도 예종 때 감무가 파견되었을 것이고, 또한 과주와 교통로상으로 관련이 있는 음죽현(陰竹縣)과 괴주, 광주의 속현인 천녕현에도 감무가 파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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