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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일대는 삼한시대 당시 마한(馬韓)에, 삼국시대에는 백제, 그 이후에는 장수왕의 남하 조치로 고구려의 영역에 속했다.『삼국사기』지리지에 따르면 고구려에 점유되었던 당시(475∼551년)에는 동사힐(冬斯?) 또는 율목(栗木)이라고 불리웠는데, 이는 문헌으로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지명이다. 통일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율목은 율진군(栗津郡)으로 바뀌고 한산주(漢山州)에 속하였다. 한산주는 당시 한강을 중심으로 지금의 서울과 경기도 중부 일대를 가리키는 지역이었다. 고려 초인 940년(태조 23)에 과주(果州, 菓州)로 개명되었다. 성종 때에는 일시적으로 부림(富林)·부안(富安) 등의 별호가 사용된 적도 있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1413년(태종 13) 지명을 ‘과천(果川)’으로 고치고 현감을 두어 다스렸다. 과천이란 현 지명이 등장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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